@ 인천공항, LOMO LC-A 20070708
여행은 생각의 산파다.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.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.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,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.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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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들레르는 가끔 리스본에 가는 꿈을 꾸었다. 그곳에 가면 따뜻하겠지. 그리고 나는 도마뱀처럼 햇볕 속에 몸을 쭉 뻗고 힘을 얻을 수 있겠지. 그곳은 물과 대리석과 빛의 도시였으며, 사고와 평온에 도움이 되는 도시였다. 그러나 그는 포르투갈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과 거의 동시에 혹시 네덜란드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. 그러자 다른 생각들이 밀려왔다. 자바나 발트 해, 심지어 북극은 어떨까? 그곳에 가면 그늘 속에서 목욕을 하며 유성이 북극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.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.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. 그가 결론을 내린대로 "어디로라도! 어디로라도!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!" 어디도라도 떠나는 것.
보들레르는 여행에 대한 백일몽을 그가 '시인'이라고 묘사하는 고귀한 영혼, 탐구하는 영혼들의 표시라고 여겨 귀중하게 생각했다. '시인'은 다른 땅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고향의 지평 안에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. 그들의 기질은 희망과 절망 사이, 유치한 이상주의와 냉소주의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했다. 기독교의 순례자들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대안적인 영역, 덜 훼손된 영역에 대한 비전을 버리기를 거부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었다.
Alain de Botton, <여행의 기술, The Art of Travel>
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인연도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.
